완벽주위와 중독

완벽주위와 중독

그녀는 완벽하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함을 보인다... 

직장에서 자신과 일하는 모든 팀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보이고 자신의 일터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하며 성실한 그녀에게 직장은 그녀의 빈틈없는 매너와 실력을 인정해 주었고 조금씩 진급이 되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후그녀는 매니저급이 되어서 팀을 보살피고 팀을 이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의 회사에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중간급 매니저 급의 여성이 들어왔는 데 자신과는 사뭇 다른 여성이었다. 옷차림이 탁월했고 자신보다 훨씬 더 높은 학력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업무 처리 능력이 뛰어나 상사의 눈에 계속 띄어서 칭찬을 계속해서 받았다. 새로 들어온 그 여성분의 옆에 있자 그녀는 자신이 점점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영역들이 눈에 보이면서 자신의 완벽하지 못함이 수치스럽게 여겨지고 자신이 받지 못하는 인정에 외로움, 쓸쓸함 그리고 좌절감이 밀려왔다. 자신의 내면에는 이런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 완벽하지 못한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도 없고 사랑을 받을 수도 없어’, ‘완벽하지 않다면 더 이상 이 일을 해봤자 소용이 없어.’ 아무도 그녀에게 회사를 그만 두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스스로 느끼는 열등감과 무가치함에 직장생활이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나면 술집으로 가 한 잔을 하면서 ‘불쌍한 나, 무가치한 나’ 에 대한 자기 연민에 빠지곤 했다. 그런 나날이 지나게 되자 그녀는 더 이상 그 직장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찾지 못하게 되었고 스스로 느끼는 자괴감으로 퇴사를 선택 하게된다.

세상은 완벽한 사람을 인정하고 좋아한다. 그 완벽함으로 성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완벽주의’에 대한 멧세지를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 짓는 사람은 자신이 완벽해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매사에 좀 더 완벽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재촉하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런데, 그렇게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의 깊은 내면에는 어쩌면 ‘나는 무가치해’ 라고 하는 깊은 핵심 신념이 자리잡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핵심 신념이 무가치한 것을 대신해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하고 그 완벽주의를 통해 자신의 무가치함을 벗어 버리려고 무던히 애를 쓰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완벽주의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다. 위에 나오는 예처럼 나보다 뛰어나고 예쁘고 더 잘하는 사람은 어디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가 완벽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도달할 수 없는 목표로 인해 좌절하게 된다.

완벽주의자들은 또한 자신에게 만족하는 법이 없다. 늘 타인과 비교하고 자신의 결점을 생각한다. 그리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내게 누군가의 부정적인 피드백은 치명적인 결함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벽주의는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칼융은 인간에게는 그림자(약점)가 있는 데 그 그림자를 인정하고 수용할 때 성숙할 수 있다고 본다. 완벽주의는 자신에게 있는 그림자를 감추고 마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완벽한 것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실제 그렇지 못한 자신의 부분을 만날 때 자신은 외롭고 공허하다. 완벽하려고 하는 것으로 인해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 나면 그 외의 삶에서 그림자가 더 크게 활성화 되는 데

그것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중독 행위들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술중독이 될 수도 성중독이 될 수도 도박 중독이 되게도 할 수 있다.

한 전문직 종사자는 자신의 직장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100%의 에너지를 다 쏟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한 마디로 직장에서 완벽한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직장에서는 완벽한 사람이나 집으로 돌아오면 짜증과 화를 너무나 잘 내는 나쁜 아빠, 나쁜 남편이 되어 버린다. 그가 직장에서 완벽한 사람이 되는 동안 그의 그림자도 같이 성장한 것이다. 결국, 완벽한 사람 뒤의 수 많은 감정의 억압과 스트레스가 식구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식구들은 이해해 줄 줄 알았지만 식구들은 그런 그를 싫어하고 점점 더 멀리하게 되고 그런 관계의 어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그는 자신을 칭찬하고 인정하는 직장의 일에 더 매달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최근, 완벽함을 추구하는 하는 한 분이 자신이 일에서 완벽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둠 속에서 하는 일들은 합리화 할 수 있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일을 잘 하니까 자신이 하는 사적인 삶에서의 잘못된 행동은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며 자신의 중독적인 행동을 지속해 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완벽주의는 사람을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서 성공하게 하기 보다는 비교하게 하고 실패감을 느끼게 하고 중독적인 행위에 빠지게 한다.

그러므로, 완벽주의를 평소에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이 완벽주의를 통해 도대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 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혹시, 어린 시절에 충족되지 못했던 주위 사람들로 부터의 인정과 사랑을 위해 그토록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닌 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완벽주의로 인해 가장 소중한 가족의 관계에서 고통을 경험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완벽해 지려는 나에게 ‘ 괜찮아, 꼭 완벽할 필요는 없어. 완벽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괜찮고 소중한 사람이야’ 라고 말해 주어서 마음에 숨을 쉬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억하자.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추구할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나에게만 독특하게 주신 달란트를 사용하여 충분한 사람이 되는 것임을…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보이는 완벽한 나의 모습이 아니라 가까운 가족에게 보이는 나의 진짜 모습입니다.”

 

이 컬럼은 Rev Dr. HUN KIM (김 훈)호주기독교대학학장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CEO)께서 제공해주셨습니다.  

Tel : 0402 140 905 / info@accu.edu.au / www.accu.edu.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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